일상의 영감을 기록하는 사람, 이승희
인스타그램에는 다양한 일상의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주말에 갈 괜찮은 식당을 검색하고, 인테리어에 참고할 사진을, 미용실에 들고 갈 머리 모양을 찾는다. 일상의 한 장면이 아니라 그 속에 존재하는 삶의 방식 자체가 레퍼런스가 되기도 한다. 영감노트(@ins.note) 계정이 그중 하나다. 계정에는 책 속 한 문장이 올라왔다가, 누군가의 트윗도 올라오고, 간판 사진이나 캡처된 앱 화면이 올라오기도 한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발견한 것들이 시골집 다락방처럼 쌓여 있는 피드를 보고 있으면, 그걸 모아놓은 이의 부지런함을 따라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영감노트의 운영자 이승희를 만나보니, 노트 안에 펼쳐진 건 그의 삶의 전부도 아닌 일부분일 뿐이었다.
에디터 송은호 포토그래퍼 황지현
그는 세 가지로 스스로를 소개한다고 말했다. “때에 따라 다르게 저 자신을 설명해요. 대부분은 마케터 이승희라고 이야기하고 있고요. 책으로 소개할 때는 <기록의 쓸모> 저자 이승희, 마지막으로는 영감노트 계정을 운영하는 관리자라고 설명하고 있어요(웃음).” 그가 가진 세 개의 캐릭터를 구분해보자면 본캐릭터는 마케터, 작가와 영감노트 운영자는 부캐릭터다. 내가 만난 그녀는 부캐릭터 중 하나인 ‘영감노트 계정 운영자’였다. 그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 ‘배달의민족’ 마케터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주제가 ‘영감’인 만큼 그의 부캐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마케터라는 본캐가 없었다면 부캐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케터 일을 하면서 노트에 기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진이나 지나가다가 본 간판 이런 거는 노트에 바로 기록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아이폰으로 찍어 뒀는데, 그것도 사진첩에서 밀리니까 어딘가에 바로 올려야겠다 해서 영감노트 계정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영감노트라는 이름은 가제 같은 거였어요. 저 스스로 ‘영감’이라고 말하는 게 왠지 오글거려서 바꾸려고 했는데, 바꿀 이름이 없어서 그냥 쭉 하게 됐어요(웃음). 시작할 땐 이렇게 영감노트로 인터뷰까지 하게 될 줄 몰랐죠.”
처음엔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이제 영감노트 계정은 그의 본 계정과 맞먹는 수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예술가에게나 쓰인다고 생각한 그 단어가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해진 데에는 그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사실 옛날에는 영감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거나, 글로 쓸 때 오글거려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감받았다’ 이런 표현을 싫어하는 분들도 되게 많더라고요. 근데 저는 조금 그걸 탈피해보자, 유난 떨어보자라고 생각해서 대놓고 인스타그램에 썼죠. 마케터로서 아웃풋을 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일부러 사소한 거에도 많이 영감을 받으려고 단련을 했거든요.”
그에게 영감은 더 나아지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을 잘 하고 싶어서 영감을 꾸준히 기록했고, 얼마 전에는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냈다. “<기록의 쓸모>라는 책은 기록보다는 쓸모에 방점이 있어요. 저는 가진 게 없고, 경험도 없어서 스스로 기록한 걸 레퍼런스로 삼아야 하는 삶이었거든요. 저처럼 손에 주어진 게 없는데,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작은 기록부터 시작해서 본인의 쓸모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에 영감노트랑 비슷한 계정이 되게 많아졌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나도 저 사람처럼 해봐야지’, ‘나도 내 것을 만들어 봐야지’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 좋더라고요.”
그의 영감노트는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다 저 좋자고 시작한 일인데, 영감노트 계정을 운영하면서 공유의 힘을 느꼈어요. 크리에이티브는 공유할수록 커지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A라는 생각을 올리면 누군가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라고 댓글을 남긴다든지, ‘이것도 좋은데 봐 보세요’라고 알려준다든지, 아니면 제가 올린 글을 리그램해서 자기 생각을 덧붙여요. 그럼 저도 그걸 보면서 아이디어가 발전돼요.”
그가 읽고 듣고, 느낀 기록들을 보고 있으면, 처음 나오는 감탄은 ‘부지런하다’ 그다음은 ‘어쩜 이런 사소한 걸 보고…!’ 영감노트를 보고 배운 점 하나는 이거였다. 영감이란, 누군가의 프로필 문구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북토크를 할 때도 사소한 것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사실 그게 어려워요. 근데 생산자의 입장에 한 번 서 보면 작은 것들을 더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명함을 한 번 만들어보면 ‘디자인을 할 땐 이런 점도 신경 쓰고, 종이는 어떻게 골랐겠다’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럼 명함 받았을 때 ‘어떻게 이렇게 만드셨어요?’ 하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예전에 배달의민족에서 함께 일한 장인성 상무님이 해주셨던 말인데요. 요즘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는데, 시청자 입장일 때는 ‘재밌다’ 하고 끝이었대요. 근데 요즘은 직접 편집을 하니까, ‘저렇게 장면 전환 땐 카메라가 몇 대 필요했겠네’, ‘음악이 몇 초 단위로 바뀌네’ 같은 게 보이기 시작해서 너무 신기하다는 거예요. 확실히 뭔가를 만들어본 사람 입장에 서면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보일수록 영감을 더 많이 받는 것 같고요.”
하지만 영감이란 본래 거창함보다 사소함이라는 단어와 더 가까운 것이었다. “저는 처음부터 거창하다고 느껴지는 건 이미 완성된 거라고 생각해요. 영감은 거창한 결과물이 되기까지의 작은 점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그 작은 점에 집중해야 큰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일상에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 같고요. 결국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도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시선을 달리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지만, 그에 앞서 갖춰야 하는 건 부지런함이다. 그는 그걸 호들갑이라고 말했다. 영감은 호들갑을 떨어야 얻을 수 있다고. “일을 할 때나 책을 쓸 때처럼 결과물을 내야 할 때는 정해진 테마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 테마에 대해 계 생각하고, 영감을 찾아다니는 편이에요. 만약에 팝업 스토어를 기획해야 한다, 혹은 물건을 팔아야 한다 하면 일부러 물건 파는 브랜드는 다 찾아보고, 직접 매장에 가보기도 하고, 해외 사이트도 들어가 보고요. 그 테마에 꽂혀 있는 거죠.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그런 테마가 없을 때에는 진짜 저한테 자극을 주는 정도만 영감노트에 기록해요.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것들만요.”
“사실 저는 게으른 영역에서는 되게 게을러요. 근데 SNS는 좋아하니까 부지런하게 하는 것 같아요. 한곳을 가도 저는 열 장을 올리니까, 안 올리거나 한 장만 올리는 친구랑 비교했을 때 많이 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것도 많고, 그걸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해요. 졸린 것보다는 궁금한 게 먼저라 뭐든 직접 가서 보고 와야 하는 성격인 거죠.”
영감노트의 테마는 그가 회사를 관두면서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마케팅 할 때 써먹을 것들을 모으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책을 쓸 때 영감노트 계정에 올렸던 것들을 보니까, 다 글쓰기 관련된 것들이더라고요. 글쓰기에 관련된 명언이라든지, 작가들의 생활에 대한 것, 책 표지나 내지 디자인 이런 게 많아서 너무 신기했어요. 요즘은 ‘언젠가 써먹을 때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영감노트를 하는 것 같아요. 요즘엔 친구들이 ‘뭐 이런 것까지 적어?’라고 하기도 해요. 저도 왜 적는지 모르는 순간이 있는데(웃음),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이야기라는 게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옛날의 기록과 현재의 기록을 연결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감을 수집하는 것도 그것들이 연결이 되면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서 일단은 저장해두는 것 같아요. 창고처럼 저장해두고, 언젠가 또 마케팅을 하든 아니면 책을 쓰든 뭔가를 할 때 그 창고를 보고 글을 쓰거나, 써먹게 되겠죠.”
지금 모으고 있는 영감들이 어디에 쓰일지는 몰라도, 전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건 알겠다. 그에게 영감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것에서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의 요즘 관심사는 건강이에요. 채소 먹는 사람들이나 솥밥, 운동, 필라테스 이런 게 자꾸 눈에 걸리더라고요(웃음). 건강에 관심을 두는 건, 라이프스타일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그전에는 계속 야식 먹고, 기름기 있는 삶을 살았거든요. 퇴사를 하면 건강한 삶을 되찾을 줄 알았는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그런 쪽으로 많이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계속 나아지려고 하는 사람한테 자극을 많이 받아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요. 예전에 같이 일했던 팀원, 동료들이 가장 영감을 많이 주는 친구들이에요. 신기한 게 배달의 민족 팀원들은 계속 발전하는 것 같거든요. 유튜브를 하면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채식에 도전하면서 그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고, 계속 나아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일이든, 일상이든, 혹은 전체적인 삶의 방향이든. 더 나아지고 싶은 것은 뭐든 될 수 있다. 영감이란 무엇이든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영감이라는 단어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한테 주로 쓰이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슈퍼에서 물건을 파는 분들도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결과물을 내는 거고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영감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아요. 영감을 찾으면서 살면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 같거든요. 감사일기라는 것도 하루하루 놓치지 않고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영감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즐겁게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하루를 굳이 호들갑을 떨면서 ‘나 오늘 이런 것도 봤고, 저런 것도 봤다’ 하면서요. 오버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는 거죠. 그래서 하루를 살아도 ‘오늘도 잘 살았다’ 느낄 수 있게 된 게 달라진 점 같아요.”
그와의 만남은 나에게 한 줄의 영감으로 남았다. ‘나도 저 사람처럼 해봐야지!’ 나의 영감노트를 만들어 일에서도, 삶에서도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을 새겼다. 결과물이 되기에는 먼 아주 작은 점이지만, 그 점은 내일이라는 작은 점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새기다 보면 거창해질 날이 오지 않을까?
* 본 기사는 컨셉진 81호 '당신의 삶엔 영감이 있나요?' 편에서 발췌했습니다.
일상의 영감을 기록하는 사람, 이승희
인스타그램에는 다양한 일상의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주말에 갈 괜찮은 식당을 검색하고, 인테리어에 참고할 사진을, 미용실에 들고 갈 머리 모양을 찾는다. 일상의 한 장면이 아니라 그 속에 존재하는 삶의 방식 자체가 레퍼런스가 되기도 한다. 영감노트(@ins.note) 계정이 그중 하나다. 계정에는 책 속 한 문장이 올라왔다가, 누군가의 트윗도 올라오고, 간판 사진이나 캡처된 앱 화면이 올라오기도 한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발견한 것들이 시골집 다락방처럼 쌓여 있는 피드를 보고 있으면, 그걸 모아놓은 이의 부지런함을 따라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영감노트의 운영자 이승희를 만나보니, 노트 안에 펼쳐진 건 그의 삶의 전부도 아닌 일부분일 뿐이었다.
에디터 송은호 포토그래퍼 황지현
그는 세 가지로 스스로를 소개한다고 말했다. “때에 따라 다르게 저 자신을 설명해요. 대부분은 마케터 이승희라고 이야기하고 있고요. 책으로 소개할 때는 <기록의 쓸모> 저자 이승희, 마지막으로는 영감노트 계정을 운영하는 관리자라고 설명하고 있어요(웃음).” 그가 가진 세 개의 캐릭터를 구분해보자면 본캐릭터는 마케터, 작가와 영감노트 운영자는 부캐릭터다. 내가 만난 그녀는 부캐릭터 중 하나인 ‘영감노트 계정 운영자’였다. 그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 ‘배달의민족’ 마케터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주제가 ‘영감’인 만큼 그의 부캐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마케터라는 본캐가 없었다면 부캐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케터 일을 하면서 노트에 기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진이나 지나가다가 본 간판 이런 거는 노트에 바로 기록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아이폰으로 찍어 뒀는데, 그것도 사진첩에서 밀리니까 어딘가에 바로 올려야겠다 해서 영감노트 계정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영감노트라는 이름은 가제 같은 거였어요. 저 스스로 ‘영감’이라고 말하는 게 왠지 오글거려서 바꾸려고 했는데, 바꿀 이름이 없어서 그냥 쭉 하게 됐어요(웃음). 시작할 땐 이렇게 영감노트로 인터뷰까지 하게 될 줄 몰랐죠.”
처음엔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이제 영감노트 계정은 그의 본 계정과 맞먹는 수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예술가에게나 쓰인다고 생각한 그 단어가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해진 데에는 그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사실 옛날에는 영감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거나, 글로 쓸 때 오글거려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감받았다’ 이런 표현을 싫어하는 분들도 되게 많더라고요. 근데 저는 조금 그걸 탈피해보자, 유난 떨어보자라고 생각해서 대놓고 인스타그램에 썼죠. 마케터로서 아웃풋을 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일부러 사소한 거에도 많이 영감을 받으려고 단련을 했거든요.”
그에게 영감은 더 나아지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을 잘 하고 싶어서 영감을 꾸준히 기록했고, 얼마 전에는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냈다. “<기록의 쓸모>라는 책은 기록보다는 쓸모에 방점이 있어요. 저는 가진 게 없고, 경험도 없어서 스스로 기록한 걸 레퍼런스로 삼아야 하는 삶이었거든요. 저처럼 손에 주어진 게 없는데,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작은 기록부터 시작해서 본인의 쓸모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에 영감노트랑 비슷한 계정이 되게 많아졌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나도 저 사람처럼 해봐야지’, ‘나도 내 것을 만들어 봐야지’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 좋더라고요.”
그의 영감노트는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다 저 좋자고 시작한 일인데, 영감노트 계정을 운영하면서 공유의 힘을 느꼈어요. 크리에이티브는 공유할수록 커지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A라는 생각을 올리면 누군가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라고 댓글을 남긴다든지, ‘이것도 좋은데 봐 보세요’라고 알려준다든지, 아니면 제가 올린 글을 리그램해서 자기 생각을 덧붙여요. 그럼 저도 그걸 보면서 아이디어가 발전돼요.”
그가 읽고 듣고, 느낀 기록들을 보고 있으면, 처음 나오는 감탄은 ‘부지런하다’ 그다음은 ‘어쩜 이런 사소한 걸 보고…!’ 영감노트를 보고 배운 점 하나는 이거였다. 영감이란, 누군가의 프로필 문구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북토크를 할 때도 사소한 것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사실 그게 어려워요. 근데 생산자의 입장에 한 번 서 보면 작은 것들을 더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명함을 한 번 만들어보면 ‘디자인을 할 땐 이런 점도 신경 쓰고, 종이는 어떻게 골랐겠다’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럼 명함 받았을 때 ‘어떻게 이렇게 만드셨어요?’ 하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예전에 배달의민족에서 함께 일한 장인성 상무님이 해주셨던 말인데요. 요즘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는데, 시청자 입장일 때는 ‘재밌다’ 하고 끝이었대요. 근데 요즘은 직접 편집을 하니까, ‘저렇게 장면 전환 땐 카메라가 몇 대 필요했겠네’, ‘음악이 몇 초 단위로 바뀌네’ 같은 게 보이기 시작해서 너무 신기하다는 거예요. 확실히 뭔가를 만들어본 사람 입장에 서면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보일수록 영감을 더 많이 받는 것 같고요.”
하지만 영감이란 본래 거창함보다 사소함이라는 단어와 더 가까운 것이었다. “저는 처음부터 거창하다고 느껴지는 건 이미 완성된 거라고 생각해요. 영감은 거창한 결과물이 되기까지의 작은 점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그 작은 점에 집중해야 큰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일상에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 같고요. 결국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도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시선을 달리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지만, 그에 앞서 갖춰야 하는 건 부지런함이다. 그는 그걸 호들갑이라고 말했다. 영감은 호들갑을 떨어야 얻을 수 있다고. “일을 할 때나 책을 쓸 때처럼 결과물을 내야 할 때는 정해진 테마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 테마에 대해 계 생각하고, 영감을 찾아다니는 편이에요. 만약에 팝업 스토어를 기획해야 한다, 혹은 물건을 팔아야 한다 하면 일부러 물건 파는 브랜드는 다 찾아보고, 직접 매장에 가보기도 하고, 해외 사이트도 들어가 보고요. 그 테마에 꽂혀 있는 거죠.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그런 테마가 없을 때에는 진짜 저한테 자극을 주는 정도만 영감노트에 기록해요.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것들만요.”
“사실 저는 게으른 영역에서는 되게 게을러요. 근데 SNS는 좋아하니까 부지런하게 하는 것 같아요. 한곳을 가도 저는 열 장을 올리니까, 안 올리거나 한 장만 올리는 친구랑 비교했을 때 많이 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것도 많고, 그걸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해요. 졸린 것보다는 궁금한 게 먼저라 뭐든 직접 가서 보고 와야 하는 성격인 거죠.”
영감노트의 테마는 그가 회사를 관두면서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마케팅 할 때 써먹을 것들을 모으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책을 쓸 때 영감노트 계정에 올렸던 것들을 보니까, 다 글쓰기 관련된 것들이더라고요. 글쓰기에 관련된 명언이라든지, 작가들의 생활에 대한 것, 책 표지나 내지 디자인 이런 게 많아서 너무 신기했어요. 요즘은 ‘언젠가 써먹을 때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영감노트를 하는 것 같아요. 요즘엔 친구들이 ‘뭐 이런 것까지 적어?’라고 하기도 해요. 저도 왜 적는지 모르는 순간이 있는데(웃음),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이야기라는 게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옛날의 기록과 현재의 기록을 연결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감을 수집하는 것도 그것들이 연결이 되면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서 일단은 저장해두는 것 같아요. 창고처럼 저장해두고, 언젠가 또 마케팅을 하든 아니면 책을 쓰든 뭔가를 할 때 그 창고를 보고 글을 쓰거나, 써먹게 되겠죠.”
지금 모으고 있는 영감들이 어디에 쓰일지는 몰라도, 전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건 알겠다. 그에게 영감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것에서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의 요즘 관심사는 건강이에요. 채소 먹는 사람들이나 솥밥, 운동, 필라테스 이런 게 자꾸 눈에 걸리더라고요(웃음). 건강에 관심을 두는 건, 라이프스타일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그전에는 계속 야식 먹고, 기름기 있는 삶을 살았거든요. 퇴사를 하면 건강한 삶을 되찾을 줄 알았는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그런 쪽으로 많이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계속 나아지려고 하는 사람한테 자극을 많이 받아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요. 예전에 같이 일했던 팀원, 동료들이 가장 영감을 많이 주는 친구들이에요. 신기한 게 배달의 민족 팀원들은 계속 발전하는 것 같거든요. 유튜브를 하면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채식에 도전하면서 그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고, 계속 나아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일이든, 일상이든, 혹은 전체적인 삶의 방향이든. 더 나아지고 싶은 것은 뭐든 될 수 있다. 영감이란 무엇이든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영감이라는 단어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한테 주로 쓰이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슈퍼에서 물건을 파는 분들도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결과물을 내는 거고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영감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아요. 영감을 찾으면서 살면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 같거든요. 감사일기라는 것도 하루하루 놓치지 않고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영감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즐겁게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하루를 굳이 호들갑을 떨면서 ‘나 오늘 이런 것도 봤고, 저런 것도 봤다’ 하면서요. 오버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는 거죠. 그래서 하루를 살아도 ‘오늘도 잘 살았다’ 느낄 수 있게 된 게 달라진 점 같아요.”
그와의 만남은 나에게 한 줄의 영감으로 남았다. ‘나도 저 사람처럼 해봐야지!’ 나의 영감노트를 만들어 일에서도, 삶에서도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을 새겼다. 결과물이 되기에는 먼 아주 작은 점이지만, 그 점은 내일이라는 작은 점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새기다 보면 거창해질 날이 오지 않을까?
* 본 기사는 컨셉진 81호 '당신의 삶엔 영감이 있나요?' 편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