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응원단장, 김정석

미션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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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이 적성에 잘 맞는 사람, 김정석


응원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체육대회에서 목청을 높여 우리 팀을 응원하던 날로 데려간다. 누군들 비슷하지 않을까? 응원하는 대상이 청군이었든 백군이었든, 혹은 또 다른 팀이었든. 우리 팀이 이기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손뼉을 치고 소리 지르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때 우리가 바란 ‘이기다’라는 말은 위를 향해 나아가는 단어이면서, 아래로 향하기도 한다. 주로 ‘시합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고통이나 아픔을 누르고 견뎌낸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응원이라는 건, 그 두 가지 모두를 바라는 일이다. 프로야구단 LG트윈스의 응원단장 김정석은 선수들이 승리를 향해 위로 나아가게 하고, 패배의 아픔은 견디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응원단장이라는 직업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였다. 운동선수들이 이기기를 돕는 직업이다.

에디터 송은호 포토그래퍼 황지현



응원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만나러 잠실에 있는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 후 며칠 만에 도로 무관중 경기로 돌아갔지만, 그날은 관중 입장이 30%로 늘어난 날이었다. 경기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임에도 경기장 주변은 한산했다. 그럼에도 김정석 단장은 조금은 들떠 보였다. 단상에 홀로 서서 응원하다가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LG트윈스 응원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석이라고 합니다. 응원단장이라는 직업의 사전적 의미는 운동경기나 선수들을 독려하고 격려하는 사람인데요. 제 생각엔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관객과 선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선수들에게는 힘을 주고, 관객들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역할이거든요.” 


관객과 선수를 잇는 역할을 한다는 소개에 어울리게 그에게선 팬과 구단, 둘 모두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LG트윈스는 프로야구의 인기 구단이죠(웃음). 많은 팬과 훌륭한 선수들이 있는, 올해 30주년을 맞은 팀이에요. 저희는 매년 100만 관중을 넘는 거의 유일한 팀이기도 해요. 작년에는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3천만 관중을 돌파한 팀이기도 하고요. 숫자가 증명해 주는 인기구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정, 그리고 자부심과 함께 그의 얼굴에서는 소년 같은 모습도 언뜻 보였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단장치곤 어린 나이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가 응원에 들인 시간과 노력은 그리 적지 않았다. “처음 응원단이라는 걸 경험한 건  스무 살에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예요. 물론 그전에도 간접적으로 응원 문화를 경험하긴 했죠. 고등학교 때 스포츠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치어리딩을 봤지만 사실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다른 고등학교의 응원단 공연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근데 제가 대학교에 입학했더니 응원단이 있다는 거예요. 막연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응원단에 들어갔어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스무 살이던 당시의 김정석은 몰랐지만, 그때 그의 삶에서 ‘응원’이라는 챕터의 첫 페이지가 시작되었다. “대학교에서 응원단 활동을 하면서 되게 즐거웠어요. 무대에 서는 것 자체도 그렇고, 무대를 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그렇게 점점 이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응원단을 하면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요. 예를 들어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 가면 꼭 장기자랑을 하는 친구가 있잖아요. 저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밑에서 박수 치는 아이였거든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해본 적이 없었는데 대학교 때 응원단을 하면서 많이 변했어요.” 그렇게 응원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써 내려갔다. 


“2014년에는 대학교에서 응원단장을 맡게 됐었는데요.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저희가 기업 공모전을 통해서 브라질 월드컵 기간에 LA에 간 거예요. 저를 포함해서 응원단원 열 명을 보내줬는데, LA 한인타운에서 저희가 주도해서 한국인들과 함께 거리응원을 했어요. 그게 대학생활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죠.” 페이지가 쌓여서 하나의 챕터로 완성되었다는 걸 그즈음 깨달았다.


     사진 제공 김정석                                                                               

“그걸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요. 사회에 나가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들더라고요. 근데 기억에 남는 것들이 응원단을 하면서 무대에 섰던 순간들이라 응원단장이라는 직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군대 전역 후에 본격적으로 일로서 응원을 시작하게 됐죠. 처음엔 응원단에서 북 치는 아르바이트도 했고,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이벤트 진행 스태프 일도 하면서 옆에서 많이 보고 배웠어요. 바로 응원단장이 된 건 아니었죠(웃음). 프로스포츠 응원을 경험한 건 농구 응원이 시작이에요. 그러다 2018년에 DB 프로미 응원단장을 맡게 되었고, LG트윈스의 단장이 된 건 2019년이에요.”


그는 한때 축구 응원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농구와 야구 응원단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응원법이 매번 달라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종목마다 다른 점이 있을까? “공통점이라고 하면 관객들을 최대한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거겠죠? 그리고 응원이 선수들에게 전해지도록 큰 목소리와 동작을 보여줘야 하고요. 종목마다 응원 방식에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축구나 농구 같은 경우는 팀플레이로 흘러가니까 팀을 위주로 응원하는데, 야구는 선수 한 명이 타석에 들어오다 보니 선수 개인에게 응원이 집중돼요. 그래서 선수 개개인마다 응원가가 있는데, 그게 야구 응원의 엄청난 매력이죠.” 타석에 서면, 선수 한 명에게 수만 관중의 응원이 쏟아진다. 그 말은 반대로 선수 개인이 타석에 섰을 때 느껴야 하는 부담감도 클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모든 경기를 이기면 좋겠지만 그게 진짜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경기 상황이 안 좋아지면, 지금이 격려가 필요한 때라고 응원을 유도하는 편이에요. 선수들이 언젠간 다시 도약할 거고, 지금 이 순간을 발파 삼아 올라가기 때문에 응원이 필요하다고요. 그리고 저는 오히려 팀이 좋을 때보다 힘들었을 때 힘을 주는 게 응원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힘겨울 때 응원하는 게 더욱더 멋진 응원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어차피 이뤄진 결과잖아요. 물론 지면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다음 경기를 위해 재충전해야겠다 생각하고 잘 추스르려고 해요.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게 나중을 위해 더 좋지 않을까요?”


관객과 선수들 중간에 서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일을 하는 만큼, 늘 방전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사실 경기 전에는 물론 긴장되죠(웃음). 항상 경기 시작 전에 애국가가 나올 때 오늘 응원을 통해서 선수들이 힘 받고 승리하면 좋겠다고 기도해요. 근데 관객분들이 지든 이기든 웃고 즐거운 시간 보내다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그래서 즐겁게 노는 마음으로 단상에 올라가려고 해요. 제가 긴장하고 경직되어 있으면 관객분들이 다 느끼거든요. 제가 즐거워야 팬들도 같이 노는 마인드가 되고요. 그래도 이 일이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내가 왜 응원단장을 했지?하면서 힘들어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웃음).


아 근데 요즘은 좀 힘들죠. 무관중 경기를 진짜 오래했거든요. 항상 팬분들이 있던 공간에 저 혼자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고 힘들었어요. 경기 내내 느껴요. 선수 이름을 부르고 파이팅을 외치면, 저를 따라서 같이 파이팅을 외친 팬분들이 늘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파이팅을 못 외쳐요. 그러니 선수들도 힘이 덜 나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제 관중이 조금이라도 입장하게 됐으니까 좀 더 힘이 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육성 응원은 못하지만 팬분들 박수소리만으로, 그리고 존재만으로 힘이 될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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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부터 알았을까? 응원을 할 땐 방식보다는 진심이 중요하다는걸.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힘든 얘기를 하면, 그걸 들어주는 일을 좋아했어요. 듣고 위로해 주는 일이요. 지금도 그렇고요. 일상적인 응원이라는 건, 말하는 것보단 듣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내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잖아요. 힘내고 싶어도, 힘을 못 내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땐 그냥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캐치하고 응해주고,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좋은 응원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응원’이 좋아하는 것에서 직업으로 바뀌면서 이제는 두 번째 챕터에 접어들었다. “제가 누군가를 응원하면 저는 상대에게 힘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저 자신도 힘을 받는 것 같아요. 이 경기장에서도 그래요. 선수들을 응원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오히려 저도 힘을 얻고 가거든요. 주변 사람들의 힘든 얘기를 듣고, 위로해 주고 힘내라고 하면 덩달아 본인도 힘을 얻고 좀 더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응원을 하면 좋은 것 같아요.” 그는 ‘응원이 적성에 잘 맞는 사람’답게, 앞으로에 대해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우선 LG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에요. 목표는 더 좋은 응원단장이 되는 거죠. 그리고 좋은 응원문화를 많이 알려드리고 같이 공유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마치고 경기장에서 나왔더니 이제 막 관중들이 입장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이 쓰인 유니폼을 입고 온 팬들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왔다. 그 후 불과 며칠 만에 다시 무관중 경기로 되돌아가버렸지만. 팬들이 다시 관중을 채울 수 있는 날이 돌아오겠지? 그는 외로운 순간을 잘 견뎌내지 않을까? 아마 그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를 응원하는 법도 알고 있을 테니까.



* 본 기사는 컨셉진 82호 '당신은 누구를 응원하고 있나요?' 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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