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모빌스 그룹
언제서부턴가 주변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으로, 주말에 찾은 공간으로, 귀여운 캐릭터가 새겨진 티셔츠로, 때론 위트가 담긴 메시지로. 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관심에 내가 꺼낸 질문은 이렇다. “아니, 그래서 뭐 하는 곳인데?”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심플하다. 일하는 곳. 그들은 일을 한다. 다만, 남들보다 더 유쾌하고 행복하게 일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고리타분하고 지겹게만 느껴지던 ‘일’이라는 단어가 모빌스 그룹의 손을 거치면 유쾌한 농담이 되는 것도 그래서다. 그들의 여정을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 위로 여러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에디터 김기수, 포토그래퍼 박은비
인터뷰란 게 원래 그렇지만, 한두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꽤 길다. 인터뷰이의 책이나 제품 같은 작업물부터 이전의 인터뷰기록까지 모두 찾아보느라 꼬박 며칠이 걸린다. 그 시간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론 일이라는 사실 자체를 까먹기도 한다. 모빌스 그룹의 인터뷰가 그랬다. 인터뷰 전날 밤까지도 그들의 책과 영상을 살폈는데, 그 과정이 고되기보다는 즐거웠다. 일방적인 친밀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한남동에위치한 사무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들은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사이다. 인연을 소개하기 위해 모춘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라인LINE이라는 메신저 서비스의 브랜딩 팀에서 만났어요. 저랑 대오는 브랜드를 시각화하는디자인 작업을 했고, 소호는 기획자였죠. 업무는 각자 달랐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대오는 기본 성품 자체가 친절한 것 같지는 않은데(웃음), 무언가를 함께할 때 믿음직스럽고 단단한 사람이었고요. 소호는 오히려 디자이너보다도 감각이 좋은 기획자였어요. 이렇게 브랜드를 만들게 될지는 몰랐지만, 함께 일하면 잘 통하겠다는 추상적인 감정은 그때부터 있었던 것같아요.” 혹자는 직장 동료 셋이 함께 브랜드를 꾸린 모습을 보며 의도적인 퇴사라고 생각했겠지만, 브랜드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퇴사의 목적은 일하는 방식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업무의 안정화를 위해 여러 요소를 깎아내요. 저희는 그 과정에서 일의 재미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초반에는 각각이 1인 사업체처럼 일했다면, 일이 세분되면서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었죠. 나는 이만큼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마치 기계 부품처럼 눈앞의 일만 하게된 거예요. 안정적인 환경이지만,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생겼어요. 이전에 자율적으로 일할 때가 훨씬 재밌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운이좋았죠. 두 가지 방식을 모두 경험하고, 더 재밌는 길을 알았으니까요.”
즐겁게 일하지 못하는 갈증을 풀기 위해, 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열심히 물을 길었다. 그 길이 녹록지는 않았는지, 대오가 웃음 섞인 탄식과 함께 입을 열었다. “회사 생활 말미쯤, 홍대 매장 간판을 바꾸라는 업무가 내려왔어요. 원래는 ‘라인 프렌즈'라는 이름이 붙어야 하는데, 캐릭터가 다양해지면서 모든 친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했거든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간판 하나일수 있지만, 저희는 브랜드의 철학을 아주 깊이 디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 이름 하나 정할 때도 항렬에 한자 뜻까지 신경 쓰는데, 쉽게 할 일이 아니라고 봤죠. 그래서 모춘을 팀장으로 한 조직을 만들어달라 요구하고, 100명이 넘는 직원과 브랜드의 방향에 대해 인터뷰를 했어요. 일을 엄청 키운거죠(웃음). 덕분에 밤이나 주말에도 근무를 했는데, 느낀 감정은 ‘재밌다'였어요. 은퇴 전까지 이렇게만 일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들이 그시간을 통해 배운 건 ‘일을 하는 태도'였다. 소호가 말을 덧붙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일을 하느냐’ 더라고요. 일하는 방식이나 태도에 따라 같은 일이 지옥이 될 수도, 너무나 재밌는 일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때 일에 대한 개념이 잡힌 것 같아요. 일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내가 더 잘 살기 위한 생산 활동이라는 걸 알았죠.”
그들이 행복한 일꾼이 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지금의 ‘모빌스 그룹'이다. 모빌스 그룹은 다양한 파트너와 브랜드 작업을 진행할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에게 유쾌한 농담을 건네는 브랜드인 ‘모베러웍스'를 운영하고 있다.
타고난 일꾼인 그들이 ‘일'에 대한 브랜드를 전개하는 건 어쩌면 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창업을 하기 전에는 시장 상황도 고려하겠지만, 일단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살피잖아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카페를 차리고,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핑 브랜드를 만들겠죠. 저희의 머릿속은 99%가 일이었어요. 누군가에게는 고되고 지겨운 단어겠지만, 저희에게는 재밌고의미 있는 활동이었거든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고, 재밌게 풀어보고 싶었어요.”
일에 대한 ‘뼈’가 있는 농담을 건네는 모베러웍스의 활동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던져온 메시지를 소호가 설명했다. “회사에서는 ASAP(As Soon As Possible)이라는 말을 정말 지겹게 듣잖아요. 무조건 빠르게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속도를 찾자는 의미로 ‘Soon’을 ‘Slow’로 바꿔서 첫 시즌을 진행했어요. 그때 함께 던졌던 메시지가 ‘small work big money’, ‘no agenda’, ‘out of office’ 같은 것들이었고요.
두 번째 시즌은 숭과 규림이라는 두 명의 페르소나에서시작됐어요. 그분들은 저희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두낫띵클럽을 만들었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Do Nothing’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주체적인 마음이었어요. 그들과 함께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고,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했죠.
세 번째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를 깨고 싶어 ‘Money talk’라는 메시지로 접근했고요. 올해에 했던 노동절 행사 ‘501workshop’까지, 총 네 번의 시즌을 진행했습니다.”
모베러웍스의 메시지는 때론 제품으로, 때론 영상으로, 때론 공간으로 구현된다. 특정한 경계가 없는 자유로움은 일하는 방식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라고 소개한다.
“스스로 딴지 거는 질문을 많이 하려고 해요. 으레 해오던 것에도 ‘왜?’라고 질문을 던지면, 다른 방식이 보이거든요. 누브랜딩의 출발도 그랬어요. 누브랜딩은 브랜딩에 새로움을 뜻하는 ‘누Nu’를 더한 건데요. 소비자는 일반적으로 브랜드의 시각적인 산출물만을 접하게 되잖아요. 저희는 ‘시작부터 그 과정을 함께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튜브 채널 모티비MoTV 댓글로 시청자들의 참여를 받았어요. 그때 약 150분 정도가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모든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시각화했죠. 사실 소비자들과 함께 브랜딩을 하는 게 기존에 없던 룰이어서 걱정했는데, 그 이후로 다른 브랜드와 작업할 때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서 정말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새로운 방식은 새로운 결과를 만든다. 자신만의 직종을 정하는 것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함이다. “네이밍을 하는 데에만 수억을 쓰는 브랜드가 있는 것처럼, 이름을 짓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명명되는 순간 그렇게 살아가게 되니까요. 저희는 직종을 스스로 정해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을 정하고, 시작할 수 있거든요. 프로듀서로 살아본 적 없는 소호가 프로듀서라고, 대오가 누디자이너라고 이름을 지은 데에는 그런 마음이 담겼죠. 저는 스테레오 타입의디자이너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유튜버'라고 정했는데, 지금 있는 명함을 다 쓰면 아예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일론 머스크가 정한 ‘테크노킹'이라는 직함이 제일 충격적이었어요. 이번에는 저도 뭔가 레슬러 같은 이름을 정해보고 싶어요. ‘모춘 더 스네이크’처럼(웃음). 이걸 보시는 분도 세상에 없는 것도 괜찮으니, 자신의 직함을 정해보세요. 주체적으로 일을 하는 데에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모빌스 그룹은 올해 노동절에 맞춰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담은 책 한 권을 냈다. 《프리워커스》. 프리랜서 같은 뉘앙스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프리워커는 회사 소속 여부와는 관계가 없었다.
“이것도 주체성과 같은 맥락인데요. 저희가 말하는 프리워커는 회사의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나를 그 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말해요. 회사에서 하는 업무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프리워커가 될 수 있는거죠. 같은 의미로 반드시 업무라고 불리는 일일 필요도 없어요. 예를 들면 종이접기를 정말 신명 나게 하는 분이나 은퇴 이후에 하고 싶던 공부를 하는분도 프리워커의 한 파트를 맡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정의하는 ‘프리워커'를 듣자, 머릿속으로 여러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구슬땀을 흘리며 사과를 따는 농부, 집을 살리는 마음으로 살림을 하는 주부,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는 점원. 프리워커들의 환한 노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닿았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사정으로 맞지 않는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호가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회사 업무는 뜻대로 되지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시선을 돌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도 추천해요. 이전 직장에서 내 생각을 구현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는데요. 무언가를 실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때 모춘과 ‘소호사'라는 그룹을 결성해, 단편 소설을 만들었어요. 만들면서 사실 엄청 싸웠는데, 당시 회사에서 느끼고 있던 무기력이 많이 해소되더라고요. 읽어보시면 재미는 없는데요(웃음). 만드는 과정은 정말 즐거웠어요. 이번에 책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점도 많고요.”
《프리워커스》의 부제는 이렇다. 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때론 질문을 던지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모춘이 영화에 빗대어 설명했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빨간 약과 파란 약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오잖아요. 빨간 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고, 파란 약을먹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아갈 수 있어요. 저는 빨간 약을 먹은 사실을 후회하는 인물의 마음도 공감 갔어요. 사실 질문이 많은 삶은 피곤하거든요. 이게 맞을지, 틀릴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죠. 그런데도 질문을 하는 건,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예요. 어떤 요인에 의해 잠식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삶을만들어 갈 수 있잖아요. 질문이 그렇게 살도록 해주는 것 같아요.”
더욱 많은 사람의 삶에 질문을 들이기 위해 이들은 도구를 고안했다. 대오가 했던 누브랜딩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한 ‘누브랜딩 키트'다.
“질문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의식적으로 바라보게 해요. 흘러가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그것만을 응시하게 하죠. 하지만 우리는 매일의 생활이 있잖아요. 나에게 어떠한 질문을 건네야 할지도, 그런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워요. 누브랜딩 키트는 그런상황에 도움이 되는 도구예요. 종이에 적힌 질문을 따라 정말 밑바닥까지 드러내서 답을 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만약 도구의 사용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정말 작은 질문으로 물꼬를 터보는 것도 좋다.
“10년 후에 당신을 상상하라는 질문을 보면, 저는 숨이 턱 막혀요. 하루하루도 어려운데, 10년 후라니! 저는 굉장히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냥 오늘 하루 중에 좋았던 일을 적어보라든가, 내일은 뭐 할 건지처럼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면 결국 질문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책을 펼쳐 그들의 사인을 받았다. 사실, 인터뷰를하면서 누군가에게 사인을 요청한 건 처음이었는데, 그 안에는 ‘일'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자는 다짐도 있었다.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그들의 조언처럼 나에게는 어떤 직종이 어울릴지 고민했다. 내가 정한 직종은 삶을 이롭게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신저’다. 모빌스 그룹의 이야기는 내가 메신저로서 전달하는 첫 번째 메시지가 되겠지.
* 본 기사는 컨셉진 92호 '당신의 삶엔 질문이 있나요?' 편에서 발췌했습니다.
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모빌스 그룹
언제서부턴가 주변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으로, 주말에 찾은 공간으로, 귀여운 캐릭터가 새겨진 티셔츠로, 때론 위트가 담긴 메시지로. 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관심에 내가 꺼낸 질문은 이렇다. “아니, 그래서 뭐 하는 곳인데?”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심플하다. 일하는 곳. 그들은 일을 한다. 다만, 남들보다 더 유쾌하고 행복하게 일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고리타분하고 지겹게만 느껴지던 ‘일’이라는 단어가 모빌스 그룹의 손을 거치면 유쾌한 농담이 되는 것도 그래서다. 그들의 여정을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 위로 여러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에디터 김기수, 포토그래퍼 박은비
인터뷰란 게 원래 그렇지만, 한두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꽤 길다. 인터뷰이의 책이나 제품 같은 작업물부터 이전의 인터뷰기록까지 모두 찾아보느라 꼬박 며칠이 걸린다. 그 시간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론 일이라는 사실 자체를 까먹기도 한다. 모빌스 그룹의 인터뷰가 그랬다. 인터뷰 전날 밤까지도 그들의 책과 영상을 살폈는데, 그 과정이 고되기보다는 즐거웠다. 일방적인 친밀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한남동에위치한 사무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들은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사이다. 인연을 소개하기 위해 모춘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라인LINE이라는 메신저 서비스의 브랜딩 팀에서 만났어요. 저랑 대오는 브랜드를 시각화하는디자인 작업을 했고, 소호는 기획자였죠. 업무는 각자 달랐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대오는 기본 성품 자체가 친절한 것 같지는 않은데(웃음), 무언가를 함께할 때 믿음직스럽고 단단한 사람이었고요. 소호는 오히려 디자이너보다도 감각이 좋은 기획자였어요. 이렇게 브랜드를 만들게 될지는 몰랐지만, 함께 일하면 잘 통하겠다는 추상적인 감정은 그때부터 있었던 것같아요.” 혹자는 직장 동료 셋이 함께 브랜드를 꾸린 모습을 보며 의도적인 퇴사라고 생각했겠지만, 브랜드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퇴사의 목적은 일하는 방식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업무의 안정화를 위해 여러 요소를 깎아내요. 저희는 그 과정에서 일의 재미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초반에는 각각이 1인 사업체처럼 일했다면, 일이 세분되면서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었죠. 나는 이만큼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마치 기계 부품처럼 눈앞의 일만 하게된 거예요. 안정적인 환경이지만,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생겼어요. 이전에 자율적으로 일할 때가 훨씬 재밌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운이좋았죠. 두 가지 방식을 모두 경험하고, 더 재밌는 길을 알았으니까요.”
즐겁게 일하지 못하는 갈증을 풀기 위해, 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열심히 물을 길었다. 그 길이 녹록지는 않았는지, 대오가 웃음 섞인 탄식과 함께 입을 열었다. “회사 생활 말미쯤, 홍대 매장 간판을 바꾸라는 업무가 내려왔어요. 원래는 ‘라인 프렌즈'라는 이름이 붙어야 하는데, 캐릭터가 다양해지면서 모든 친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했거든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간판 하나일수 있지만, 저희는 브랜드의 철학을 아주 깊이 디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 이름 하나 정할 때도 항렬에 한자 뜻까지 신경 쓰는데, 쉽게 할 일이 아니라고 봤죠. 그래서 모춘을 팀장으로 한 조직을 만들어달라 요구하고, 100명이 넘는 직원과 브랜드의 방향에 대해 인터뷰를 했어요. 일을 엄청 키운거죠(웃음). 덕분에 밤이나 주말에도 근무를 했는데, 느낀 감정은 ‘재밌다'였어요. 은퇴 전까지 이렇게만 일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들이 그시간을 통해 배운 건 ‘일을 하는 태도'였다. 소호가 말을 덧붙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일을 하느냐’ 더라고요. 일하는 방식이나 태도에 따라 같은 일이 지옥이 될 수도, 너무나 재밌는 일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때 일에 대한 개념이 잡힌 것 같아요. 일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내가 더 잘 살기 위한 생산 활동이라는 걸 알았죠.”
그들이 행복한 일꾼이 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지금의 ‘모빌스 그룹'이다. 모빌스 그룹은 다양한 파트너와 브랜드 작업을 진행할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에게 유쾌한 농담을 건네는 브랜드인 ‘모베러웍스'를 운영하고 있다.
타고난 일꾼인 그들이 ‘일'에 대한 브랜드를 전개하는 건 어쩌면 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창업을 하기 전에는 시장 상황도 고려하겠지만, 일단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살피잖아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카페를 차리고,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핑 브랜드를 만들겠죠. 저희의 머릿속은 99%가 일이었어요. 누군가에게는 고되고 지겨운 단어겠지만, 저희에게는 재밌고의미 있는 활동이었거든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고, 재밌게 풀어보고 싶었어요.”
일에 대한 ‘뼈’가 있는 농담을 건네는 모베러웍스의 활동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던져온 메시지를 소호가 설명했다. “회사에서는 ASAP(As Soon As Possible)이라는 말을 정말 지겹게 듣잖아요. 무조건 빠르게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속도를 찾자는 의미로 ‘Soon’을 ‘Slow’로 바꿔서 첫 시즌을 진행했어요. 그때 함께 던졌던 메시지가 ‘small work big money’, ‘no agenda’, ‘out of office’ 같은 것들이었고요.
두 번째 시즌은 숭과 규림이라는 두 명의 페르소나에서시작됐어요. 그분들은 저희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두낫띵클럽을 만들었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Do Nothing’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주체적인 마음이었어요. 그들과 함께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고,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했죠.
세 번째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를 깨고 싶어 ‘Money talk’라는 메시지로 접근했고요. 올해에 했던 노동절 행사 ‘501workshop’까지, 총 네 번의 시즌을 진행했습니다.”
모베러웍스의 메시지는 때론 제품으로, 때론 영상으로, 때론 공간으로 구현된다. 특정한 경계가 없는 자유로움은 일하는 방식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라고 소개한다.
“스스로 딴지 거는 질문을 많이 하려고 해요. 으레 해오던 것에도 ‘왜?’라고 질문을 던지면, 다른 방식이 보이거든요. 누브랜딩의 출발도 그랬어요. 누브랜딩은 브랜딩에 새로움을 뜻하는 ‘누Nu’를 더한 건데요. 소비자는 일반적으로 브랜드의 시각적인 산출물만을 접하게 되잖아요. 저희는 ‘시작부터 그 과정을 함께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튜브 채널 모티비MoTV 댓글로 시청자들의 참여를 받았어요. 그때 약 150분 정도가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모든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시각화했죠. 사실 소비자들과 함께 브랜딩을 하는 게 기존에 없던 룰이어서 걱정했는데, 그 이후로 다른 브랜드와 작업할 때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서 정말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새로운 방식은 새로운 결과를 만든다. 자신만의 직종을 정하는 것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함이다. “네이밍을 하는 데에만 수억을 쓰는 브랜드가 있는 것처럼, 이름을 짓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명명되는 순간 그렇게 살아가게 되니까요. 저희는 직종을 스스로 정해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을 정하고, 시작할 수 있거든요. 프로듀서로 살아본 적 없는 소호가 프로듀서라고, 대오가 누디자이너라고 이름을 지은 데에는 그런 마음이 담겼죠. 저는 스테레오 타입의디자이너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유튜버'라고 정했는데, 지금 있는 명함을 다 쓰면 아예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일론 머스크가 정한 ‘테크노킹'이라는 직함이 제일 충격적이었어요. 이번에는 저도 뭔가 레슬러 같은 이름을 정해보고 싶어요. ‘모춘 더 스네이크’처럼(웃음). 이걸 보시는 분도 세상에 없는 것도 괜찮으니, 자신의 직함을 정해보세요. 주체적으로 일을 하는 데에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모빌스 그룹은 올해 노동절에 맞춰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담은 책 한 권을 냈다. 《프리워커스》. 프리랜서 같은 뉘앙스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프리워커는 회사 소속 여부와는 관계가 없었다.
“이것도 주체성과 같은 맥락인데요. 저희가 말하는 프리워커는 회사의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나를 그 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말해요. 회사에서 하는 업무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프리워커가 될 수 있는거죠. 같은 의미로 반드시 업무라고 불리는 일일 필요도 없어요. 예를 들면 종이접기를 정말 신명 나게 하는 분이나 은퇴 이후에 하고 싶던 공부를 하는분도 프리워커의 한 파트를 맡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정의하는 ‘프리워커'를 듣자, 머릿속으로 여러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구슬땀을 흘리며 사과를 따는 농부, 집을 살리는 마음으로 살림을 하는 주부,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는 점원. 프리워커들의 환한 노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닿았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사정으로 맞지 않는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호가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회사 업무는 뜻대로 되지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시선을 돌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도 추천해요. 이전 직장에서 내 생각을 구현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는데요. 무언가를 실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때 모춘과 ‘소호사'라는 그룹을 결성해, 단편 소설을 만들었어요. 만들면서 사실 엄청 싸웠는데, 당시 회사에서 느끼고 있던 무기력이 많이 해소되더라고요. 읽어보시면 재미는 없는데요(웃음). 만드는 과정은 정말 즐거웠어요. 이번에 책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점도 많고요.”
《프리워커스》의 부제는 이렇다. 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때론 질문을 던지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모춘이 영화에 빗대어 설명했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빨간 약과 파란 약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오잖아요. 빨간 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고, 파란 약을먹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아갈 수 있어요. 저는 빨간 약을 먹은 사실을 후회하는 인물의 마음도 공감 갔어요. 사실 질문이 많은 삶은 피곤하거든요. 이게 맞을지, 틀릴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죠. 그런데도 질문을 하는 건,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예요. 어떤 요인에 의해 잠식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삶을만들어 갈 수 있잖아요. 질문이 그렇게 살도록 해주는 것 같아요.”
더욱 많은 사람의 삶에 질문을 들이기 위해 이들은 도구를 고안했다. 대오가 했던 누브랜딩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한 ‘누브랜딩 키트'다.
“질문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의식적으로 바라보게 해요. 흘러가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그것만을 응시하게 하죠. 하지만 우리는 매일의 생활이 있잖아요. 나에게 어떠한 질문을 건네야 할지도, 그런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워요. 누브랜딩 키트는 그런상황에 도움이 되는 도구예요. 종이에 적힌 질문을 따라 정말 밑바닥까지 드러내서 답을 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만약 도구의 사용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정말 작은 질문으로 물꼬를 터보는 것도 좋다.
“10년 후에 당신을 상상하라는 질문을 보면, 저는 숨이 턱 막혀요. 하루하루도 어려운데, 10년 후라니! 저는 굉장히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냥 오늘 하루 중에 좋았던 일을 적어보라든가, 내일은 뭐 할 건지처럼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면 결국 질문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책을 펼쳐 그들의 사인을 받았다. 사실, 인터뷰를하면서 누군가에게 사인을 요청한 건 처음이었는데, 그 안에는 ‘일'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자는 다짐도 있었다.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그들의 조언처럼 나에게는 어떤 직종이 어울릴지 고민했다. 내가 정한 직종은 삶을 이롭게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신저’다. 모빌스 그룹의 이야기는 내가 메신저로서 전달하는 첫 번째 메시지가 되겠지.
* 본 기사는 컨셉진 92호 '당신의 삶엔 질문이 있나요?' 편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