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3 당신은 산책을 하고 있나요?
EDITOR'S LETTER
저에겐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답답하고 참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그곳이 어디든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것인데요. 부끄럽지만, 이 습관은 어릴때부터 꽤나 상습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급 회의 시간, 반장으로서 회의를 주도하고 있을 때 반 친구들이 시끄럽게 떠든다는 이유로 화가 나서운동장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점심시간엔 친구들과 사소한 다툼이 생겨 너무 속상했던 나머지 저를 가로막는 수위 아저씨를 제치고 교문을나가버렸고요. 성인이 되어서도 저의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심해졌죠. 회사를 운영하면서 문제가 생길 때, 특히 저의 연인인 발행인과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저는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곤 했습니다. 제가 어찌나 상습적으로 그러는지 발행인은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제가 회사 밖으로나가버려 혼자 괴로워하는 꿈도 가끔씩 꾼다고 합니다.
마치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이렇게 문을 박차고 나가 제가 가는 곳이란 딱히 없습니다. 그냥 길이 뻗어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무조건 걸을뿐이죠.
저는 이렇게 걸으며 먼저 화를 식힙니다.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지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요. 이 문제가 왜 일어났고, 내가 어떤 부분 때문에 화가 난것이며, 상대방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내 행동은 이게 최선인지…. 그렇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 스스로 답을 찾는 시간은 빠르면 약 1시간, 오래 걸리면반나절 정도. 그 시간 동안 저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걷습니다.
제가 떠나고 남은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마음이 후련해져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왠지 기분이 좋을 때보다 좋지 않을 때 산책을 더 찾게 됩니다.
그런데 대체 밖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화가 나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걸까요? 아니 걷는 게 과학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길래 걷고 나면 제가 가졌던 문제가명쾌해지는 걸까요? 언젠가 한번은 대책 없이 사무실을 나와 터덜터덜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 갈 곳도 없는데 어딜 가려고 이렇게 나오는거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걷다 보니, 문득 저 멀리에서 제가 보이는 듯하더라고요. 제가 처한 이 문제를 이미해결했다는 듯, 위너처럼 웃고 있는 미래의 제가 말이죠. 그러고 나니 마치 제가 걷는 이 길이 ‘복잡한 상황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김경희’가 ‘객관적인 눈을가진 김경희’를 만나러 가는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모습에서 나와 마음에 드는 제 모습으로 걸어간 게 아니었을까요?
저에게 산책이란 ‘나를 향한 시간’입니다. 비록, 콧노래 부르며 발걸음 가볍게 거니는 산책의 모습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조금 더 나은 나를 향해 가는발걸음이니 이것도 긍정적인 산책의 모습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산책은 어떤 모습인가요?
편집장 김경희
상품 일반정보
도서명 : 컨셉진
저자, 출판사 : 라이프 팩토리
크기 : A6
쪽수 : 230
제품구성 : 종이책
출간일 : 2012.08
ISBN 2288-8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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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3 당신은 산책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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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답답하고 참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그곳이 어디든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것인데요. 부끄럽지만, 이 습관은 어릴때부터 꽤나 상습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급 회의 시간, 반장으로서 회의를 주도하고 있을 때 반 친구들이 시끄럽게 떠든다는 이유로 화가 나서운동장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점심시간엔 친구들과 사소한 다툼이 생겨 너무 속상했던 나머지 저를 가로막는 수위 아저씨를 제치고 교문을나가버렸고요. 성인이 되어서도 저의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심해졌죠. 회사를 운영하면서 문제가 생길 때, 특히 저의 연인인 발행인과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저는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곤 했습니다. 제가 어찌나 상습적으로 그러는지 발행인은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제가 회사 밖으로나가버려 혼자 괴로워하는 꿈도 가끔씩 꾼다고 합니다.
마치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이렇게 문을 박차고 나가 제가 가는 곳이란 딱히 없습니다. 그냥 길이 뻗어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무조건 걸을뿐이죠.
저는 이렇게 걸으며 먼저 화를 식힙니다.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지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요. 이 문제가 왜 일어났고, 내가 어떤 부분 때문에 화가 난것이며, 상대방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내 행동은 이게 최선인지…. 그렇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 스스로 답을 찾는 시간은 빠르면 약 1시간, 오래 걸리면반나절 정도. 그 시간 동안 저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걷습니다.
제가 떠나고 남은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마음이 후련해져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왠지 기분이 좋을 때보다 좋지 않을 때 산책을 더 찾게 됩니다.
그런데 대체 밖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화가 나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걸까요? 아니 걷는 게 과학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길래 걷고 나면 제가 가졌던 문제가명쾌해지는 걸까요? 언젠가 한번은 대책 없이 사무실을 나와 터덜터덜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 갈 곳도 없는데 어딜 가려고 이렇게 나오는거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걷다 보니, 문득 저 멀리에서 제가 보이는 듯하더라고요. 제가 처한 이 문제를 이미해결했다는 듯, 위너처럼 웃고 있는 미래의 제가 말이죠. 그러고 나니 마치 제가 걷는 이 길이 ‘복잡한 상황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김경희’가 ‘객관적인 눈을가진 김경희’를 만나러 가는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모습에서 나와 마음에 드는 제 모습으로 걸어간 게 아니었을까요?
저에게 산책이란 ‘나를 향한 시간’입니다. 비록, 콧노래 부르며 발걸음 가볍게 거니는 산책의 모습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조금 더 나은 나를 향해 가는발걸음이니 이것도 긍정적인 산책의 모습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산책은 어떤 모습인가요?
편집장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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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컨셉진
저자, 출판사 : 라이프 팩토리
크기 : A6
쪽수 : 230
제품구성 : 종이책
출간일 : 2012.08
ISBN 2288-8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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